Tuesday, December 12, 2006

Why Study? Don't Worry to Make Mistakes and Bring Your Creativity!

김길수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부하는 즐거움에 대한 글을 정리해서 보내드립니다.
공부는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창조하는 길'을 의미합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만나게 되면 자극과 도전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배움은 인생의 거친 항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마른 논에 물을 대면 싹이 돋아나고, 계속 물을 대면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그래도 계속 물을 대면 나무는 더 커서 열매는 맺고 그늘이 저서 쓸모가 있게 된다.
사람도 계속해서 머리에 물을 대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제타룡: 전 도시철도공사 사장, 독학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한 인물

#1. 첨단 과학일수록 축적된 학문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축적된 학문을 좇아가는 것은 공부라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은 공부로 잘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 때문에 학교
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나중에 평범한 사람으로 주저앉는 기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기만의 엉뚱한 생각, 즉 독창적인 사고가 축적된 이론과 만났을때 비로소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독창적인 사고는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서 자기
전공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가운데 자연스레 싹트게 된다.

그리고 축적된 학문을 다 익힌 상태에서 공부는 두 가지 경로를 거쳐 비약한다.
하나는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다.흔히 공부나 연구라고 하면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쓰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공부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혼자서 끈질기게
생각하는 것이 과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공부다. 가령 지하철이나 연구실에서 혼자
골똘히 생각할 수도 있고, 칠판에 수식을 써보면서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공부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물리학의 중심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몰려온 다양한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풍부한 학문적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 연구자들은 이런 만남을 계기로 자기 연구 분야에서 뜻밖의 획기적인
해답을 얻곤 한다.

미국인들과 공부하면서 또 감탄한 것은 틀릴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들은 생각과 의사표현이 매우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현상을 설명할 때
그것과 별로 관련 없는 이론과도 쉽게 연관 짓는다. 그러는 가운데 정말 획기적인
발견이 나온다.

학문은 예술과 같아서 독창성이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기존의 것을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학자나 대학생 들은 이런 면에서 대담한
독창성이 매우 부족함을 절감하곤 한다.
-임지순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나노소재기술 분야의 세계적인 인물

#2. 지식을 많이 얻는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이미 해놓은 일에 묻혀 헤어나지 못한다면 즐거움은 사라진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깨달은 바를 입증하고 널리 펴기 위해, 이미
이루어진 지식을 증거로 삼고 부품으로 이용해야 한다.

학문의 저작은 몇 만 개의 부품을 필요로 하는 자동차나 비행기보다 더욱 정교하다.
부품이 따로 놀지 않고 각기 맡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총괄 설계가 생명이다.
밑변과 꼭짓점을 들어 양쪽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 많은 부품 또는 기존의
지식으로 밑변을 늘여야 총괄설계를 탁월하게 해서 꼭짓점을 높일 수 있다.
밑변을 넓히는 데만 힘쓰고 꼭짓점을 올리지 못하면 움직이지 못하고 보이는 것이 없다.
밑변이 좁은 것을 무시하고 꼭짓점을 무리하게 높이는 구조물은 쉽사리 허물어진다.
밑변과 꼭짓점은 반대가 되는 위치에 있으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생극의 관계를
가진다. 상극과 상생을 각기 체험하고 한데 합치는 과정에 긴장된 즐거움이 있다.

밑변 넓히기와 꼭짓점 올리기는 불교의 교종과 선종에서 하는 공부와 상통한다. 경전을
널리 학습하는 교종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학승이다. 참선을 해서 깨달은 경지에
이르면 선승이라고 한다. 양쪽을 함께 하는 것이 공부의 이상이다. 많이 알면서 깊이
깨달아야 지식이 자기 것이 되고, 깨달은 바를 널리 펼 수 있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 국문학 연구에 큰 획을 그은 인물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이 물음에 한마디로 대답할 수 있다. 즐거우니까. 공부보다
더 즐거운 것을 생각하기 어렵다. 다른 것들도 얼마간 즐거울 수 있으나,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니 즐거움이 줄어든다. 공부는 그렇지 않아 수십 년 동안 계속 해도
줄곧 즐겁다. 하면 할수록 더 좋아 그만둘 수 없다."
* 전체 출처: 김열규 외 29인, <공부의 즐거움>,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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