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서 '다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패배는 그것으로 끝이다. 죽음이다.
'다음' 공격이란 말도 있을 수 없다.
공격이 실패한 사이 치명적인 역공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싸움의 승패는 일격필살(一擊必殺), 단 한방에 달려 있다!!
이것은 실화다! | |
60 마리의 황소와 맞서 47마리의 뿔을 꺾어낸 남자 암흑의 일제 강점기, 전 일본 공수도 대회를 석권했으며 역도산을 무릎꿇린 미국의 레슬러 톰 라이스를 발차기로 제압하고 한국인으로 태어나 * 최배달 (1922-1994) 본명 최영의. 일제 강점기, 온갖 수모와 차별을 겪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일본 가라데 선수권 대회를 재패하고 일본 전역의 고수들을 차례차례 제압했으며 그에 대한 공개처형을 선언한 일본 무도계가 고수들을 총출동시킨 무사시노 대결에서 30대 1의 싸움을 완승했다. 일본 청소년이 뽑은 위대한 인물 10걸의 한 사람. * 극진공수도 '머리는 낮게, 눈은 높게, 마음은 넓게, 효를 원점으로 다른 이들을 이롭게.'라는 캐치프레이즈하에 무도인 스스로의 극기의 수련을 요구해 극진('極眞')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최배달의 실전무술이 바탕이 되어 있으며 순간에 상대를 파악해 한 방에 승부를 결정하는 '일격필살'이 특징이다. 140개국 1200만명의 수련인구가 있다. |
1. 왜 최배달인가? | |
원정출산, 병역기피, 해외 이민 열풍... 요즘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고 대한민국을 떠나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던 시절, 한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을 때에도 조국을 잊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역도산'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려했던 것과 달리 최영의(본명)는 자신의 이름을 '배달' 이라 명명하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강조했다. (한국으로의 귀국이 허락되지 않았음에도 그는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고 한국에는 아직도 그의 호적이 남아있다.) 조국이 부끄럽다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원망스럽다고 말하는 모두에게, 최배달은 묻는다. 왜 네가 조국의 힘이 되지 않는가? <바람의 파이터>는 최배달이 온 몸으로, 일생을 통해 보여준 그 질문의 답을 들려주는 영화다. |
2, 왜 극진공수도인가? | |
한국은 태권도, 일본은 가라데, 중국은 쿵푸...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가라데 (공수도)를 전 세계에 전파시키며 헐리웃은 물론 세계 왕실과 각국 특수부대의 공식 무술로 자리매김시킨 1등공신은 바로 한국인 최배달이 한국의 전래 무술 '택견'을 토대로 만든 '극진 공수도'다. 한국에는 최배달이 태권도의 보급을 위해 태권도가 자리잡은 이후에야 알렸지만 한국을 제외한 세계 전역에서 '극진 공수도'는 동양 무술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다. 역도산의 가라데 춉 역시 최배달이 직접 사사했으며, 이종격투기로 각광받는 K-1도 '극진공수도'를 토대로 하고 있다. 또한 컴퓨터 게임의 메가 히트작 '스트리트 파이터' 역시 '극진공수도'가 틀이 되었으며 캐릭터중 동양인 '료'는 최배달을 모델로 하고 있다. 대한이 만든 세계의 무도, 우리가 '극진공수도'를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
3. 왜 일격필살인가? | |
최배달의 무도는 '일격필살 (한 번의 공격으로 승리를 얻는다)'을 특징으로 한다. 모든 힘을 손 끝에 모아 내지르는 단 한 방으로 최배달은 전 세계의 내노라하는 파이터들과, 심지어 맹수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했다. 최배달은 '신의 손'이라 불린 자신의 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돌을 치면 손뼈가 부러졌다. 그 뼈가 불으면 다시 돌을 쳤고 다시 부러졌다. 부러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다보면 뼈는 돌보다 단단하지고 마침내 돌을 부수게 된다. 나는 내 온 몸을 이렇게 단련했다..' 돌보다 단단하다는 소뿔을 날려버린 최배달의 손. 수많은 시련 속에 넘어지고 짓밟히면서도 더 단단하게 다져지고, 더 높이 솟구친 도전과 의지의 결정.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다! |
* 최배달 | |
"최영의란 분이 계셨지. 전 세계를 구름처럼 떠다니면서, 맞짱을 뜨신 분이야. 그 양반은 황소 뿔도 여러 개 작살내셨다. 이런 식이다. 딱, 아...아...앞에 딱 서. 너 소냐? 나...나...니, 최영의야! 그리고 뿔을 딱 잡어. 그리고 내..내리쳐. X나게 내리치는 거야...X나게. 소뿔이 부러질 때까지…" 코미디계의 국민배우 송강호를 발굴한 영화 <넘버3>에서 그가 가장 힘주어 연기한 대사는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인 극진공수도의 창시자 최배달의 소개다. 여관방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뜰 날을 기대하는 건달인 영화 속 그에게 '최배달'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고, 가장 든든한 우상이었다. 최배달(본명: 최영의)은 1922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생했다. 16세에 도일, 야마나시 소년항공학교에 재학하던 1939년 공수도(가라데)에 입문, 1947년 24세에 전후 최초로 열린 전 일본 공수도 선수권 대회를 제패했다. 1948년에는 키요즈미산에서 18개월 동안 수도생활을 하면서 몸을 단련하였는데, 폭포수 밑에서 좌선을 하고 야생동물과 싸우고 맨손으로 나무와 바위를 치는 고행 끝에 극진 공수도를 완성했다. 이후 세계를 돌며 중국의 쿵푸, 프랑스의 사바테, 브라질의 카포에라, 발리송 권법, 미국의 프로레슬러, 태국의 킥복서 등과 실전을 벌여 무패행진을 계속해 나갔다. '신의 손'이라 불리기 시작한 그는 150연승을 달리던 美 프로레슬러 톰 라이스가 한국계 레슬러 역도산(力道山)을 이기자 대결을 자청, 삼각 점프킥 한방으로 눕혀 버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진검(眞劍)을 든 상대와도 맨손으로 대결, 승리한 적도 있다. 초인적인 스피드로 허공에 떠 있는 종이에 구멍을 뚫었으며 맨주먹으로 20cm의 자연석을 격파하고, 한주먹에 맥주병 14개의 목을 날리는 등 도저히 믿기 어려운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꺾기도 했다. 1961년, 극진회를 창립했으며 1959년과 1962년에 시카고 뉴욕 캘리포니아 등지에 분관을 설립, 30개의 기왓장을 박살내는 등 격파술 시범이 전파를 타면서 미국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최배달은 70년대 이소룡 이전 가장 명성을 날린 무도가였다. 스페인 국왕, 요르단 왕실, 영화배우 숀 코넬리 등의 무술 사범을 역임하였으며 전세계 140개국 1200만명 수련인구를 자랑하는 국제가라테연맹의 총수, 극진회관의 관장이 되었다. 세계가 인정한 절대신화의 주인공 최배달. 그는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차별과 무시 속에서 가슴 속 울분을 수련의 에너지로 삼아 일본을 놀라게 하며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승부를 가릴 때마다 두려움에 머리가 한움큼씩 빠지면서도 그는 의지를 꺾지 않았으며 도전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러나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을 맞이한 조국은 그를 단지 싸움꾼이라고 치부했으며 소를 때려잡는 미치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만든 극진 가라데가 태권도라며 원조를 운운했으며 일본에 협조한 변절자로 지목해 멸시를 보내기도 했다. 최배달은 한국국적을 포기, 일본에 귀화했다. 오래 전부터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그가 '일본의 위대한 영웅 10걸' 중 한명으로 뽑히자 극진회를 후원하던 사토 전 일본총리가 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끌어안지 못한 영웅은 배달민족의 뜻이 담긴 최배달, 일본명 오야마 마스터쓰(大山倍達)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최배달에게 조국은 대한민국, 하나였다. 이에 대해 그는 귀화가 아니라 단순한 일본국적 취득이라고 설명하곤 했다. 또한 전세계의 극진가라데 수도인들은 일정한 단수가 되면 유단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일본 도쿄에 있는 극진회관에 가서 단체합숙과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최배달은 "...극진회관은 국적을 가리지 않지만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람의 파이터>는 우리가 몰랐던 영웅 최배달, 포기를 모르는 한국인의 근성 최배달, 불패신화의 주인공 최배달에 대한 대한 영화다. 평생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던 최배달. 세계를 제패한 거인이자 영웅이지만 동포들의 편견과 무관심 앞에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영웅담을 이야기하려 하려 한다. |
*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의 인생연표 | |
1923년 7월 전북 김제 출생 1948-1950년 신공수로 전국의 가라데도장 순례, 격파 1951년 1월 유도의 달인 니노 이글, 대륙낭인 검객 료마와 대결, 승리 1953년 3-11월 시카고 프로레슬링협회 초청으로 1954년 1월 하와이에서 역도산과 첫만남, 역도산에게 가라데를 가르치다 1956년 4월 동남아시아 원정, 권법 연구 1957년 6월 유럽 원정. 1958년 4월 멕시코시티에서 투우소와 결투, 부상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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